Installation view_어느…파쿤의 성星


초등학교 미술 수업이었는지 실과 수업이었는지 모르겠다. 폐품을 이용한 공작 시간이 가끔 돌아왔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손재주가 없다(그래서 미술 작가는 못되고 이렇게 글이나 쓰고 있지). 그때마다 내 책상 앞엔 늘 조잡한 쓰레기들만 가득 쌓이곤 했다. 딴 애들이 집에서 가져온 헌옷으로 예쁜 헝겊 달력을 만들 때 나는 넝마조각을 만드는 식이었다. 나는 물건이란 게 사서 쓰다 버리면 되지, 이런 일이 무슨 소용이 있냐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렇게 평론하는 입장이 되었다. 알고 보니까, 기성품을 본 쓰임새와 달리 새로운 형태나 의미로 다시 탄생시키는 작업은 여기 미술계에서 공공연한 일이었다.
그것이 사회 제도로 자리 잡은 그 먼 옛날부터 예술은 실용성을 담보로 두고 있기는 했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중히 여겨지는 디자인의 심미성만 보더라도, 오래도록 폄하 당했던 소크라테스의 실용성 미학은 이제 예술의 중심으로 당당히 복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반대 진영의 기세도 만만찮다. 화가이자 설치 작가인 이소진 또한 여기 서 있다. 그녀의 특기는 실생활에서 원래 용도를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작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인스톨레이션 작업이다. 이 설치작들은 자신의 평면 회화 작업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색으로 치장되어있다. 겨울 시즌에 맞닿은 이소진의 작업은 차가운 금속 비늘과 새하얀 솜뭉치, 그리고 알록달록한 장치들이 차가움과 따뜻함의 대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재미있는 상징물(예컨대 팀 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의 악몽들>을 연상시키는 형상들)이 곳곳에 배열되어 있다. 이것은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묘한 메타포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행복함이라는 겉포장 속에 담긴 갖가지 감정을 느꼈다. 트리는 성탄절이라는 종교 의식과 관련을 맺고 있지만, 그 유래는 기독교가 아닐뿐더러, 종교의 신성함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의례적 질서 속에서 전통을 만들었다. 어쨌든 트리를 둘러싼 집 안팎의 공간은 뒤르케임(E. Durkheim)의 종교이론 식으로 말하자면 그것만의 독특한 장소적 현현이 벌어진다. 지금 어른으로 성장한 세대들이 즐기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는 사실 각자 어린 시절의 그 무렵으로 돌아가려는 퇴행이다. 이는 영화 <시민 케인 Citizen Kane>에서 주인공이 죽기 전에 말한 ‘로즈버드’의 실체와도 같은 것이다. 이소진의 작품 <어느...파쿤의 성星>도 우리를 유년기의 행복했던 어느 한 때로 데려다주는 장치이다. 파쿤은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폴>에서 폴과 니나를 4차원 세계로 데려다주는 인형 이름이다. 따라서 작가와 코디네이터(그 또한 좋은 작가인 이은재)가 완성한 이 작업은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게끔 하는 문턱인 셈이다. 그것은 <나니아 연대기 Susan of Narnia>의 장롱이나 <닥터 후 Dr. Who>에서 경찰 전화박스 모양의 타임머신 타디스(Tardis), 혹은 <황금 나침반 His Dark Materials>의 금색 나침반, <반지의 제왕>의 반지와도 같은 매개체다.
그녀의 작품은 조곤조곤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한다. 아마도 이소진 작가 본인이 작가노트를 통해 그 이야기를 담아낼 게 분명하고, 유리상자의 전체 기획자인 정종구 선생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여기에 내가 이렇게 말을 보탠다. 담론이 흥하는 것은 작가에게 나쁜 일이 아니지만, 한 편에서 그녀는 두려워한다. 너무 많은 표현과 해석은 자칫 작품을 난삽하게 보일 우려가 있으니까. 나는 이번 전시에서 기획자도 아니고 큐레이터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 입장이었더라면 절제에 관한 강박을 갖지 말라고 북돋웠을 것이다. 하던 걸 안 하면 병난다. <어느...파쿤의 성星>은 양혜규의 설치 작업처럼 여러 레퍼런스에 기대어 중첩된 콘텍스트를 창조하지만, 마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목성에 우뚝 선 모노리스처럼 그녀 스스로의 작업 과정에 뭔가 기념비적인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단순한 게 좋다.
앞서 밝힌 바대로, 그녀가 애당초 형상화하려 한 레퍼런스는 <이상한 나라의 폴>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애니메이션 스토리를 작업 초반에 제외했다고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매혹된 <이상한 나라의 폴>에 관한 미완성의 이미지는 우리가 여전히 기다릴 가치가 있다.). 그 대신 보충된 텍스트는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이다. 냉혹하면서도 관능적인 <눈의 여왕>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안티 히로인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블라디미르 프로프의 민담 형태소 분석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눈의 여왕은 예컨대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못된 여왕으로부터 넥스트의 노래 <사탄의 신부>에서 언급되는 ‘한 겨울의 여왕’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의 전형적 캐릭터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작가는 눈의 여왕이 품은 얼음과 불의 성정을 유리상자 안에 실현했다.
작가는 이 특별한 전시에서 하나의 장르로 판타지(환상) 미술을 창조하려고 한다. 우리는 판타지 문학, 판타지 영화와 같은 말은 쓰지만 판타지 미술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서사 양식으로 구성된 예술에서는 환상이 하나의 주제가 되지만 조형예술은 재현하려는 대상과 작품의 결속력이 애당초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환상은 공포와 아름다움과 아이러니를 동반한다. 이런 요소들은 이소진의 미술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차 보이는 그 작업도 실은, 예컨대 레디메이드 개념 미술, 여성해방론과 같이 정형화된 개념과는 무관하게, 환상 속 세계를 필연적으로 이끌어 내는 주술적인 힘이 직설적으로 서려있다.
– 갤러리 분도 아트 디렉터/예술사회학 윤규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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