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 #5


해 질 녘 정글을 배경으로 굶주린 사자가 영양의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퓨마는 사자가 먹고 남은 것을 취하기 위해 숨죽이고 있으며, 맹금은 동물의 살점을 늘어뜨린다. 저 뒤 수풀 속에는 새의 머리를 한 거인이 이들을 말없이 지켜보고 섰다. 화폭 안에 등장한 동물들이 각자의 역할을 연기하는 듯한 이 작품은 이번 전시의 모티브인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의 <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Le Lion, ayant faim, se jette sur l’antilope (The Hungry Lion Throws itself on the Antelope)]>이다. 원작자인 앙리 루소는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파리에서 활동했던 작가로서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49세가 되어서야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사실주의를 표방하고 동경해왔으나, 독학으로 그림을 그려야만 했던 대표적인 일요화가(본업을 하면서 남은 휴일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 당시에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재능에 대해 의심치 않았으며 부단한 노력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 냈다.

<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는 루소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정글 시리즈’중 하나로, 같은 시기에 그렸던 26점의 그림 중 가장 큰 작품이기도 하다. 그림이 가진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매번 부제를 붙이곤 했던 작가는 이 작품에 [굶주린 사자는 영양을 덮쳐 갈기갈기 찢는다. 퓨마는 자기 몫을 차지할 때를 기다리며 숨죽인다. 맹금은 입에 문 가엾은 동물에서 뜯어낸 살점을 아래로 길게 늘어뜨렸다. 해가 진다.]라는 부제를 붙였다. 마치 연극 대본의 한 대목 같은 느낌이다. 작품은 정글을 배경으로 하지만 루소는 살아생전 정글을 비롯해 프랑스 밖 어디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실제로 이런 사냥 장면은 정글이 아닌 열린 사바나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며, 퓨마는 정글에 살지 않고, 새머리를 한 거인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다. 그러나 그 덕분인지 작품의 초현실성과 연극적인 분위기는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

그는 Jardin des Plantes 파리 식물원에서 식물들을 스케치하고, 파리 만국 박람회 때 문을 연 동물학 갤러리에서 박제된 야생 동물을 관찰해 작품에 사용하곤 했다. ‘이국의 낯선 식물을 볼 때면 나는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라고 말하기도 했던 작가는 정글을 그리는 것 자체에 큰 매력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앙리 루소는 이처럼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대상에 자신만의 상상력을 더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후 1942년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 작가들에 의해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며 큐비즘 등에 영향을 주었고, 피카소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등 모더니즘의 대부로 인정받게 된다.

트윈피그는 이번 전시에서 앙리 루소의 작품이 가진 초현실주의와 연극적인 구성, 작품의 색채 등에 영감을 받아 이를 본인들의 독자적인 그래픽 패턴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진초록과 검정, 흰색, 세 가지 색채로만 구성된 화면은 트윈피그만의 치밀하고 빼곡한 패턴을 입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들의 작품은 드로잉 블라인드의 새하얀 공간과 만나 겨울 속 생경한 초록의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총 여섯 등분으로 나뉘는 작품은 공간에서 온전한 형태를 갖추기도 하고, 임의로 배열되기도 하면서, 각각이 작품의 부분이자 전체로서 기능한다. 이는 작품의 모든 부분이 동등한 밀도와 중요성을 가졌던 앙리 루소의 작업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또한, 작품과 함께 전시되는 아트월, 에코백, 파우치 등은 이번 작품의 패턴을 활용한 것으로 이를 통해 제품과 작품의 경계를 허무는 트윈피그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선명한 색채와 패턴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연극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캔버스 속에서 펼쳐지는 연극의 한 장면
이지원 (독립큐레이터)

By 트윈피그

트윈피그(twinpig)
박소운, 양효주 두 명으로 구성된 디자인 그룹. 두 사람의 그래픽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 2005년 결성 이후 순수 작업을 비롯하여 다양한 기업들과의 프로젝트를 다방면으로 진행해오고 있으며, 주로 도식화된 패턴을 이용한 모노톤의 제품이 특징이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토탈 라이프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http://www.twinpig.com Exhibitions - solo 2015 Twinpig 트윈피그 개인전, 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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