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 인터스페이스, Interspace

인터스페이스, Interspace ; 
‘인터스페이스;’라는 제목으로 전시중인 조현수의 조각들은 표면상 정체가 분명한 사물의 형상, 그리고 그 형상을 제작하는 독특한 방식에 따라 읽히기 쉽다. 작품의 감상은 일차적으로 자동차 타이어, 자전거, 바이크 수트와 각종 장비, 공, 가스용기 등 갖가지 종류의 재현된 일상 사물을 인지하면서 시작된다. 이어서 관람자들은 그러한 사물들이 평범한 기법의 조각과는 사뭇 다른 외형, 이를테면 그물망 형태를 띤 독특한 외피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은 몇 가지 일반화된 해석을 떠올리게 한다. 예컨대 60년대 팝아트에서 나타나는 핸드 메이드 레디메이드, 클래스 올덴버그의 소프트 조각, 상품 레디메이드 기반의 80년대 매개조각(mediated sculpture) 등 일상 사물의 재맥락화와 관련하여 익히 알려진 논의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한편으로 작가가 선별한 대상과 형식, 즉 일상 속 특정 사물을 제재로 삼는 동시에 드리핑과 캐스팅이라는 상호모순적인 기법을 절충한 면모는 몇 가지 차별화된 질문을 제기한다고 여겨진다.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선택된 일군의 사물이 매개하는 인상, 제작기법과 관련된 조형적 측면, 그리고 무엇보다 외부와 내부를 동시에 가시화하는 독특한 막의 존재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지점들을 가리키고 있다. 

우선, 이러한 작품들은 평범한 사물의 사실적인 재현으로서 수용된다. 그런 이유로 작품에 대한 감상은 명확한 지시대상을 갖는 기호, 또는 실제 사물과 만들어진 사물간의 차이를 기초로 이루어질 것이다. 다시 말해 작품의 의미작용은 어떤 제재가 선택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재현되었는가의 문제에서 출발 할 수 있다. 일견 무작위로 선택된 것처럼 보이는 사물들은 사실상 작가의 일상적 경험을 바탕으로 특정한 의도 하에 조합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한정된 범위의 환경 속에서 마주치는 대상들은 고유한 맥락이나 관계항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타이어(Used Tires)>의 경우, 작가가 자신의 생활 반경 속에서 마주한 장소와 사물에 대한 기억을 재구성하고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체험 당시의 기억들을 가능한 한 충실히 반영하고자 한 결과로 보이며 그런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나름의 조형적 실험을 수행해왔다. 작가는 레디메이드나 실물 캐스팅 등 상대적으로 일반화된 기술을 사용하기 보다는 형틀 표면에 강화플라스틱 액체를 뿌림으로써 마치 물감자국으로 이루어진 조각처럼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런 방식으로 재현된 사물은 뿌리기 행위의 흔적을 반영하는 동시에 시선을 통과시키는 가벼운 형태라는 독특한 특징을 갖는다. 그러므로 제시된 작품들은 비록 ‘일상의 미학’이라는 일반적인 주제를 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형식미를 보여주는데, 이는 특히 단색으로 제작된 <자전거(cycle)>, <모토크로스(motocross)>의 표면에서 두드러진다.

여기서 작품 표면이 지닌 형식상의 특징은 일상적 기호로서의 의미와 별개로 작품 감상의 또 다른 층위를 이룬다. 표면이 주는 인상은 레디메이드에 대한 안정적인 지각을 혼란스럽게 만들며 흥미로운 시각적 체험을 형성한다. 이 작품들은 일차적으로 레디메이드로 수용되지만 곧 그물망으로 이루어진 카오스적 세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누군가 전시장에 들어설 경우, 배열된 작품들은 일차적으로 부피와 질량이 느껴지는 형상으로 지각되기 쉽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가까이서 수용되는 그 표면은 회화적 제스처를 연상시킨다. 사물의 외곽 틀은 흩뿌려진 액체의 흔적의 집합처럼 보이며, 이는 자연히 추상표현주의 혹은 액션 페인팅의 표면에서 나타나는 행위의 과정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측면은 제작 과정에 기인한 것으로서 실제로 작가주체의 행위와 기성품의 복제라는 상반된 미적 원리는 작가가 일련의 작품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원리를 이룬다. 요컨대 작업과정의 결과물은 평면적 요소와 삼차원적 요소, 즉흥적 묘사와 복제된 형상, 예술적 기법과 일상 사물의 외형 등 이질적인 인상간의 경계와 상호침투를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언급한 바와 같이 일종의 ‘그려진 조각’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조형적 실험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필자에게 있어서 더 큰 관심을 끄는 지점은 그러한 조형적 양가성(ambivalence)이 매개하는 메시지이다. 표면의 성질과 역할에 주목해 볼 때, 선으로 이루어진 표면은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약화시키는 일종의 막으로써 기능하면서 사물의 안쪽 면을 드러내는 동시에 사물에 대한 시선을 표면 너머로 통과시킨다. 불투명한 외면만으로 이루어진 조각과 달리, 오브제 내부의 빈 공간, 그리고 오브제 뒤쪽의 공간도 노출시키는 것이다. 독특한 표면에 따른 이러한 효과는 ‘아주 얇은 막(앵프라맹스, inframince)’의 기능에 비유할 수 있다. 즉 작품의 형식적 특색이 사물의 뒷맛 또는 사물 내부와 외부 ‘사이(inbetween)’의 공간에 대한 관심을 이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나아가 상반된 존재들 간의 상호침투에 대한 가정을 가능하게끔 한다. 예컨대 농구공이나 가스통 등 밀폐된 사물의 표면과 이면 사이, 그리기와 조각 사이, 나아가 일상사물과 그것의 예술적 변용 사이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견되는 경계를 다소 느슨하고 개방된 것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시된 작품들의 윤곽을 형성하고 있는 비정형의 표면은 ‘사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유추하도록 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것은 닫힌 구조의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 개념적으로나마 유연한 경계를 나타낸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조현수의 조각은 특정 사물을 포착, 조형적 재구성을 거쳐 결과적으로 경계의 내파(implosion)을 연상시키는 형태를 구축한 것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저자의 생각을 대변하거나 개인적 감상을 투사하기에 앞서 다양한 수용방식과 그에 따른 의미작용을 고려하여 내린 결론이다. 덧붙여 여기서 제안한 몇 가지 작품읽기는 여러 가지 해석 모델 중 하나일 뿐 그의 작품에는 보다 많은 미적특질이 잠재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개별 대상들의 정체가 명료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사물이 선택된 계기, 배열된 방식, 매체나 형식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임의성(randomness)이 오히려 정보의 양을 증가시켜주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또 어떤 방식으로 특정한 사물을 통해 불특정한 의미망을 끌어낼지 궁금해진다.

글: 손부경(예술학,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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