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개인전을 통해 발표해온 기존의 연작은 완벽한 타인들이 내 흥미의 대상으로 바뀌면서 발생하는 실존적인 힘을 포착하는 동시에 대상을 인식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사람의 무리 속에서 물처럼 흐름이 되어 흘러가는 군중은 개인의 에너지를 서로 상쇄시키고 존재감을 무력화하고, 우리가 그 안에 속할 땐, 내가 몇명을 지나쳐 이동하는지도 모르고 걸으며,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도 명확히 기억할 수 없었다. 주의(注意)는 더욱 더 자신에게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지역성과 문화가 빠르게 외부와 뒤섞인 채 외형으론 점차 구분 되어가지 않는 사회의 일원으로, 군중의 얼굴이 동시대의 지역성과 문화의 풍경을 담는 매체라고 생각했다. 이성을 향한 맹목적 가치에 오랫동안 가려진 감성의 표출욕구는 면면에 잘 드러났고, 어느새 형태를 떠나 개인의 얼굴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원시적인 힘에 주목하고 있다는 걸 깨달아, 이를 반영하고 전달하기 위한 표현을 연구했다.
그래서 현대에도 쉽게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전통적인 매체인 회화를 선택했는데, 또 다른 맥락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은 분명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으면서도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따라서, 이미지와 순간성이 만나면서 발생하는 찰나, 존재하고 사라지는 것들을 직설적, 직감적으로 손을 통해 걸러낼수 있어 가장 적당했다. 또, 색의 이론에서 내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색채론의 저자 괴테는, 화학 색을 설명하며 광물 혹은 물고기, 곤충, 새, 인간 등 몇 가지 분류를 통해 특징을 언급하고, 인간의 단계에서 원색은 완전히 우리를 떠나게 된다며 짚어주었고, 나는 이 대목에서 원시적 접근을 이뤄내기 위한 도구로 인간에게 드러나지 않는 그 원색을 인간에게 사용해야 할 결정적 동기를 부여받았다.
직설적이다. 그 때문에 더욱 진한 단계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설계된 방법은 지극히 관조적인 나의 시선과 만나 군중속에서 한 개인의 얼굴을 주목할 때 그들의 존재가 격화된 순간을 담을 수 있었다.
이제 이전의 경험을 통해 인식을 소재로 삼았던 맥락에서 나아가, 감성을 더욱 확대하고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 속 여러 면에서 개인에 그 자체에 조금 더 주목해 보기로 했다. 원자화된 현시대의 개인, 즉 사회의 원자단위 구성원으로 불리는 그들, 아니 우리는, 독자적 파편화가 진화될수록 혼자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람의 유대로부터 도망치고, 급기야 개인 그 자체로 사는 삶이 더 편리해져가는 환경을 조성하는 고리를 만들며, 소통이 개인의 내부에서만 포화한 상태에 이른다, 이는 바이러스라는 외부의 요소로부터 방어 하는 것에 우선을 두었던 병리적 모습을 우울과 같은 내부의 문제로 모습을 전환시키기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결정으로 타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시키면서 내재적 폭력을 낳아 그것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 반영되고, 나는 시대적 풍경이 되어 드러나는 그 단편적인 형태들을 계속 찾고 있다.
– 2013 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