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motte_NO.1


탈색된 인물과 시대의 초상, 전신의 새로운 전개

작가 허용성의 작업은 인물을 지지체로 삼고 있다. 그의 인물은 작업의 근간일 뿐 아니라 그가 세상과 대면하는 구체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사진을 방불케 하는 엄정한 형상에 핏기를 거둬들여 탈색한 듯 한 창백한 얼굴, 그리고 이에 더해지는 붉은 눈동자의 초상들은 그의 작업을 규정하는 일차적인 인상이다. 그것은 분명 객관적 사실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결코 현실적이지 않다. 더불어 익히 익숙한 일상의 얼굴들이지만 오히려 낯선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객관적인 사실성과 인물의 평범한 일상성에서 비롯되는 기묘한 낯설음은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까지 한다. 어쩌면 바로 이러한 낯설음과 불편함이 바로 그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핵심적인 메시지일 것이라 읽혀진다.
사실 미술에 있어서 인물은 대단히 보편적인 소재이다. 인류의 오랜 역사발전 과정을 거쳐 축적된 인물에 대한 심미적 표현 요구는 바로 모든 회화 이론의 기본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동양에 있어서의 화론 역시 이러한 인물의 표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이른바 ‘전신’(傳神)이 바로 그것이다. 전신은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나 재현을 넘어 작가의 주관적인 관찰과 해석을 통해 인물의 내면까지도 표출해 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작가의 주관과 내면에 대한 추구는 기운(氣韻), 사의(寫意) 등의 핵심가치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인물화의 해설에 있어 그것을 인물이라 지칭하지 않고 초상(肖像), 전신(傳神), 혹은 사진(寫眞)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인간을 물질적 객체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정신적 가치로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적 동양회화의 인물관을 구현함에 있어 필연적인 요구는 바로 이형사신(以形寫神)이다. 즉 형상을 통해 인물의 정신적인 내용까지를 표출해 낼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객관의 주관화이다. 작가의 작업이 사진을 방불케 하는 박진하는 객관성을 전제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주관적인 해석을 통해 개별화하고 있음은 바로 이러한 이형사신의 덕목을 상기케 하는 대목이다. 그는 육안에 의한 관찰의 결과를 대단히 집요하게 구체화하고 있다. 대상에 박진하는 그의 몰입은 대단히 빼어난 것이다. 그것이 매우 사실적이기에 오히려 인물이라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자체를 무색케 할 정도이다. 이는 어쩌면 형상과 표현에 대한 그의 본능적인 감각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며, 나아가 형상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표출한다는 요구에 대한 그의 실천적 답변일 것이다. 그 결과 그의 인물은 사실에 박진하는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도 주관화된 개별성을 개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형사신의 주관적 해석이자 현대적 번안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이형(以形)을 실천하는 방법은 대단히 합리적인 것이다. 왜곡이나 과정을 배제한 채 대상의 객관적 형상에 육박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는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는 바이다. 그것은 손에 대한 지극한 긍정과 확신, 그리고 그리기에 대한 존중 등으로 해설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대상을 마주하고 있는 듯 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형태미와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묘사력, 그리고 이러한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무수한 과정을 감내한 작가의 치열한 작업 의지가 점철된 화면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견고하고 견실하다. 이는 당연히 서구적인 합리성과 객관성의 표현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의 성취가 이에 그친다면, 혹은 그의 성취를 단순한 객관적 형태미의 재현과 같은 지엽적인 부분으로 제한한다면 우리는 그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보다 핵심적인 가치를 간과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의 작업이 단순히 객관의 재현의 말단적인 기능의 평가에 그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형상을 통해 대상에 대한 주관화를 성공적으로 표출해 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신(寫神)의 귀결되는 인물화의 핵심적 가치에 접근하는 것이며, 그의 작업이 전통적 가치에 함몰되지 않고 현대라는 시공을 호흡할 수 있는 소이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대상으로 작업을 한다. 이는 다분히 일상적인 것으로 작가는 이들에 대한 일정한 이해와 해석이 전제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일상에서의 객체로서의 자신의 주변을 관찰하고 이를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바로 자기 자신의 또 다른 투영일 것이다. 결국 작가는 자신의 주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영하고, 이들의 인물을 통해 자신의 자화상을 표출하는 셈이다. 일상은 그 자체로는 그저 평범한 삶의 양태로 존재하지만, 작가의 해석에 의해 읽혀짐으로써 의미를 지니게 된다. 특히 그것이 인물의 감정, 혹은 상황을 전제로 한 내밀한 삶의 기록이 전제되었을 경우 이미 일상이라는 표피적인 가치에서 벗어나 유의미한 삶의 한 형태로 제시되게 마련이다. 그것은 우연을 필연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작가는 특유의 담백하고 정치한 필치로 자신의 주변을 더듬어 나가며 타인의 초상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기록해 나간다. 그것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형상을 지니고 있지만 투명하다 못해 창백하기까지 한 독특한 표정으로 보는 이를 마주하고 있다. 생명의 온기마저 배재된 창백한 인물은 그 박진하는 사실적 표현으로 인해 보는 이를 매우 불편하게 한다. 더욱이 동공마저 없거나, 혹은 눈가에 붉은 빛을 머금은 인물들은 불안하고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그는 인물들을 객관적인 형상을 통해 표현하지만, 그것을 탈색시킴으로써 돌연 또 다른 것으로의 충격적 변환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시각적인 합리성은 인물로서의 객관성을 담보해 주지만, 그의 탈색된 인물들을 마주하며 온전히 인물로 읽기에는 매우 불편하다. 이는 그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동시에 그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그의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왜, 그리고 무엇을 탈색시킨 것일까?
그는 인물, 혹은 초상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이해를 탈색시키고 있다. 대상으로써, 그리고 객체로 존재하는 물질로서의 인물이 아니라 또 다른 읽기의 대상으로써 인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는 기계적인 묘사에서 비롯되는 기능적 표현을 탈색시키고 있다. 더할 수 없이 정치한 묘사를 통해 그는 기계적인 정밀함과 합리적인 객관성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에 대한 긍정과 인간에게서만 비롯되는 온기를 표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는 객관, 혹은 사실에 대한 선입견을 탈색시키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것은 육안에 의한 객관성에서 비롯되는 경직된 편견과 아집에 대한 역설적인 물음일 것이다. 또 그는 객관적인 주변의 초상을 지극한 객관화를 통해 주관화함으로써 가상의 초상으로 변환시키고, 이를 통해 불안하고 공허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시
대의 초상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 해석된다.
작가의 작업에 대한 몰입과 집착은 그의 화면을 통해 익히 확인할 수 있는 바이다. 더불어 인물에 대한 그의 해석과 표현 역시 기성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것이기도 하다. 재료와 형식, 소재와 표현이라는 경직된 한계에서 벗어나 그가 표출해내는 화면은 일정한 기대를 걸만큼 충분히 긍정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가 보여주고 있는 작업에 대한 진지함과 성실한 몰입은 우리에게 건강한 작가의 출현을 기대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라 여겨진다. 김상철(동덕여대 교수)

By YongSung Heo

나는 세상에 순응하지도 그렇다고 반하지도 못하는 복합적인 갈등구조 속 한 세대의 '초상'에 집중하고 있다. 절망과 좌절, 패배주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세상을 향한 공허한 외침들은 나의 작업에 원동력이 된다. 그간 고민하던 시각적 경험과 신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감, 외부적 요인과 영향으로 인하여 주체의 결핍 등에서 오는 내면갈등과 혼란을 통해 표현된 우리시대의 '초상'으로 세상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고자 한다. 꽃피는 봄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허용성 Exhibitions - solo 2014 OCI Cre8tive Report - 창작스튜디오 2013 입주작가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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