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ight of Brugge-Dyonisus


예술가의 집
– 그 내밀한 공간으로 들어가다.

김경민(성북구립미술관 학예연구사)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1884-1962)는 ‘집’은 인간의 사상과 추억과 꿈을 한 데 통합하는 가장 큰 힘의 하나로 우리들의 최초의 세계이며, 하나의 우주라고 이해한다. 집은 물리적인 분리에 따라 외부와 구별되는 내부 공간으로서 장소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현상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인간의 깊고 내밀한 삶이 시작되거나 특정한 삶의 기억 혹은 사건들이 머물러 있는 좌표로써 새로운 시공간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특히, 예술가에게 있어 집 혹은 아뜰리에는 예술가의 삶이 투영된 수많은 예술작품이 탄생되는 공간이며, 자신만의 사유로 이루어진 독자적인 우주세계이다. 예술가들은 그 은밀한 공간 속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존재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또 창조한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한다는 것은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혹자의 말처럼 예술가의 공간으로 들어서는 것은 예술가의 삶이 빚어낸 작품의 본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예술가의 집」시리즈는 작품 속에 존재하고 있는 작가의 유년 혹은 무의식적 배경과 개인적 심연(深淵)의 역사에서 그 첫 걸음이 시작된다. 사소한 개인의 일상에서 파생된 삶의 흔적과 공간에 새겨진 기억들은 예술 작품을 통해 개인적 서사를 인류 보편적인 의미로 확대시키는 동시에 결국 하나의 예술적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제 그 첫 번째 예술가의 집 문을 조용히 두드려본다.

*
십여 년 전, 합정동에 있던 이경미 작가의 작업실을 첫 방문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당시 허름한 창고와 다름없었던 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낯선 방문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존재는 고양이 나나와 랑켄이다. 이어 시선을 압도하며 좁은 작업실 한 쪽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던 철학·역사·문학·예술 서적들과 여기 저기 펼쳐져 있는 패널 위에 드리워진 형형색색의 한복천들. 그리고 수많은 붓자국의 흔적들이 남아있던 팔레트와 짜다 남은 물감 튜브들로 가득 찬 바닥까지. 카오스 그 자체였던 작업실의 풍경은 작가의 나무 패널 위에서 어느 순간 초현실의 세계로, 무한우주의 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나는 결코 꿈을 그린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렸던 건 항상 나의 현실이었다.”
– 프리다 칼로 –

프리다 칼로의 유년의 집 ‘카사 아술(Casa Asul- 파란집)’처럼 작업실 곳곳에 쌓인 시간의 흔적과 기억들, 작품에 등장하는-작가가 애완용으로 키우는- 동물들, 그의 삶과 연관된 갖가지 물건들.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든 시공간의 흔적들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자, 예술 작품 그 자체인 것이다. 이경미의 모든 작품은 그를 둘러싼 삶의 시공간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롯이 자신을 둘러싼 그 공간에서 자아의 근원에 대한 탐색은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한 개별적 존재에서 점차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이해로 확대되고 있다. 이처럼 수많은 사유의 과정을 거쳐 초현실적인 풍경으로 펼쳐진 작품의 이면에는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현실적인 시선이 깃들어 있다.

1. 또 다른 자아 : 고양이 ‘나나’
어린 시절 작가는 ‘집’이라는 내밀한 세계 속에 갇혀 있었다. 그가 집이라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나머지 가족들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끝없이 기다리는 일이었다. 이 길고 긴 기다림에서 시작된 외로움과 고독은 어머니의 부재와 아버지의 죽음과 같은 일련의 상황들로 연속해서 이어지며, ‘사라짐’ 혹은 ‘상실’에 대한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결핍을 야기한다. 이는 인간의 무의식의 심층 속에서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작가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상실된 존재의 진실을 찾아 돌고 도는 궤적을 그리며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존재의 사라짐을 대신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서게 되는데, 이경미에게 고양이 ‘나나’는 외로운 탐색을 멈출 수 있는 집(안식처)이자 무중력 상태의 우주처럼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세계가 되어 주었다. 이렇게 고양이 ‘나나’는 끝없는 상실감의 회귀로부터 작가를 구원해준 대상이자, 그 자신의 영혼이 대입된 또 다른 자아이다. 그래서 <나나 Ⅲ>(2006)와 같은 초기 작품들은 또 다른 자아의 발견을 강조하듯이 ‘나나’의 얼굴-작가의 자화상과도 같은-을 크게 클로즈업 하여 보다 극적인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후, 이경미의 작업은 드넓은 바다 위에서,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끝없이 펼쳐진 도심의 공간 속에서 형형색색의 한복천으로 감싸여 있는 나나와 랑켄의 모습을 담아낸다. 특히, (2008)에 나타난 작가 자신의 실제 모습은 무의식의 심연에 감춰두었던 상처를 수면 위로 꺼내어 치유하고자 한 작가의 의지가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와 고양이들은 끊임없이 파도치는 바다 위에 놓여져 있는데, 이는 프로이트의 손자가 실패(실을 감은 실타래)를 던져서 안보이면 ‘Fort(포르트)’, 다시 잡아당겨서 보이면 ‘Da(다)’라고 외치길 반복하며 어머니의 부재가 가져온 짧은 상실을 견뎌냈던 놀이를 연상시킨다. 파도가 밀려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바다는 작가에게 마치 어머니의 상실감을 다시 상기하게 하는 듯 그의 시선은 바다 쪽을 외면한 채 자신의 고양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가장자리에는 어머니의 돌아옴을 나타내는-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한복천이 나무 패널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어쩌면 이 시기에 작가는 어머니의 부재로부터 생긴 내면의 상처가 서서히 치유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2. 소유와 존재: 유리병, 상자와 서랍, 캐비닛(cabinet)
인간이라면 누구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모든 것이 소실되고 무(無)로 돌아가는 죽음은 불멸에의 욕망을 지닌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사라진 아버지와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고양이 나나는 작가의 무의식 속 상실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하여 반복적으로 생성되는 ‘존재 불안’을 야기한다. 작가에게 아버지는 자기 존재의 근원이며 나나는 또 다른 자아 정체성으로 존재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가의 존재 불안은 상실된 혹은 상실될 지 모를 대상에 대한 일종의 집착적이고 강박적인 증세로 발현되며, 자신의 자아가 투영된 대상을 반복적으로 만들고 수집한다.
작품 (2011), (2011)는 역설적인 작품명과 함께 고양이 나나와 랑켄, 심지어 작가 자신까지도 왜곡되고 변형된 모습으로 유리병 속에 박제되어 담겨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인간의 유한한 시간 속에서 작가는 수없이 복제된 자신의 아바타 (avatar) 를 통해 불안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한다.
한편 작가는
상자와 서랍, 캐비넷의 형태로 이루어진 공간 속에 그의 무의식을 둘러싼 일련의 풍경들(파도치는 바다, 무한한 우주 공간 등)과 그 심연에 존재하는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호일 풍선 들을 넣어둔다. 일반적으로 상자나 서랍과 같은 수집 공간은 우리에게 소중한 물건 또는 개인의 추억이나 기억과 관련된 것들을 넣어두는 장소이며, 집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내밀한 장소이다. 그 속에 저장된 개인적 심연의 서사들은 작가의 심리 상태에 따라 상자의 안과 밖으로 구획된 경계의 지점에서 세상 밖으로 드러나기도 하며 때로는 은닉되기도 한다. 마치 그의 내면 속 슬픔과 씁쓸함으로 남은 아버지의 존재가 이해되고 용서되는 순간, 상자 속에 갇혀있던 풍선들이(2011) 공중으로 높이 날아올라 밤하늘의 별이 되는 것처럼(2012).

3. 무한회귀의 세계: 헤테로피아 그리고 유토피아
이경미의 저부조 회화 작품들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관점에서 시작된다. 그는 과거 늘 다니던 거리에서 건물과 주변 공간이 만들어낸 시각적 착시로 인해 한순간 길을 잃게 된다. 이후로도 이와 유사한 시각적 경험의 반복은 그에게 ‘보는 것’ 혹은 ‘보이는 것’들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인지적 관점을 넓히는 계기가 된다. 이경미는 다양한 사유와 인식의 방법을 통해 평면과 공간, 개체와 개체의 연결, 불가능한 상황 등을 화면에 연출함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구조를 보다 다차원적으로 확장한다. 작가의 작업노트에 언급되어 있듯이 판화가 M.C. 에셔의 작품 은 그가 세계를 인식하는 관점이나 방법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한 작품의 원형이 된다. 이 작품 속에 배치된 건물의 구조와 사물들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작품 속의 정상적인 개체들은 부분과 부분을 연결하는 지점에서 서로 어긋나고 모순된 개체처럼 보인다. 이처럼 시작과 끝이 모호한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시각적 이동은 결국 처음의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되풀이 하고, 그 과정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물리적인 법칙이나 한계를 넘어선 시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테이블 위로 펼쳐진 삼차원의 거리 풍경과 그 사이로 밀려든 바다의 파도가 다시 테이블 위에 늘어진 천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가 하면, 전경에 쌓여있는 서적들은 건물과 동일한 위치선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논리 정연하게 묘사된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작가는 평면 위에 부착된 입체 구조물(건물이나 책의 모서리, 문틀 등)과 대상의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현실적이고도 초현실적인 세계를 구축한다. 기묘한 풍경이 자아내는 무한 공간 속에 배치된 여러 가지 기호와 상징, 알레고리들은 가야 할 곳을 잃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다.

(2013), (2014), (2014) 등 이경미의 최근작에서는 다양한 역사와 문화, 철학의 이념을 상징하는 개체와 지리적 배경이 병치(倂置)된 기묘하고 복잡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의 세계가 펼쳐진다. 미셀 푸코가 언급한 이 세계는 낯설거나 이질적인 것들이 혼재하는 공간, 위와 아래의 수직구조가 아닌 대등한 평행구조로 존재하는 공간, 현실과 환상의 이중적인 구조가 가능한 공간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그 기묘하고 환상적인 세계는 얼핏 보아서 우주의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현실 세계의 관념과 원리를 넘어선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 또 다른 유토피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점점 더 복잡하고 불투명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 실체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의 삶은 현실이자 환상이다. 현실에서 환상으로, 환상에서 현실로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무한궤도를 따라 우리는 계속 걸어간다. 언젠가는 다다르게 될 또 다른 유토피아를 꿈꾸며…
*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간에 대한 애착을 가진다. 공간은 수많은 시간이 응집되고 집적된 장소로 인간은 공간에 의해 또는 공간 속에서 과거의 기억과 역사를 되살릴 수 있다. 예술가에게 집은 존재의 근원과 무의식이 머무르고 있는 곳이다. 그 내밀한 공간 속에서 부유하는 환상의 편린(片鱗)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을 모두 담고 있다. 한 개인의 서사에서 시작된 기억과 추억들은 예술가의 상상에 의해 인류 태고(太古)의 역사와 원형으로 점차 확장된다.

By 이경미

Exhibitions - solo 2014 예술가의 집: 이경미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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