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쌓기


□ 전시 서문

시간의 현상이 기록된 캡슐

천석필(이랜드문화재단 학예실장)

시간의 속성은 과거로부터 진행되어 현재에 이른다. 현재라는 말이 끝나는 순간, 이미 과거가 발생하고 다시 새로운 현재라는 진행형의 과정을 얻게 된다. 과거란 현재를 세워주는 버팀목이며 일순간이건 수 십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라 해도 현재의 것들과 연결된 사슬과 같은 관계이다.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것은 기억이나 어떤 흔적을 통해서다.

작가가 생각하는 것은 역사성에 관한 인식이다. 역사는 현시대를 유?무형의 형태로 기록한다. 심지어 내가 관망하는 것까지 포함될 정도로 함의의 폭이 넓고 깊다. 작가는 2008년도에 인도 여행을 떠났는데, 이 때의 인상이 매우 강렬했다고 한다. 이때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시간과 미래의 의식에 대한 표현의 방법을 연구할 당시였다. 인도 여행지에서 경험한 흙집 벽과 현대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며, 공존하는 사람들의 인상 속에서 동시대의 현상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인간 삶의 본질적인 내면의 차이는 구분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동일한 시대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특별히 황토로 지어진 가옥에서 시간성을 보게 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흙벽의 흘러내린 흔적과 도시에 휘날리는 흙먼지가 바로 하나됨이었다.

박능생의 <도시풍경>을 보며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은 미래형의 어떤 모습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저층 건물만을 그린 작품에서는 더욱 그렇다. 더구나 뭔가에 가려지는 듯한 느낌까지 더해지니 이러한 추측은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우리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하는 건물의 외관이지만, 어떤 이유로 이러한 상태의 작품을 그리게 되는 것일까? 작가의 관점에서 상가의 건축물은 시간의 속성을 보여주는 대상이다. 작품의 건축물은 하나의 건물이 아닌 여러 개의 상가 건물을 쌓아 올려놓은 형태다. 건축한지가 30~40년 이상 된 낡은 상가의 복층 구조를 만들어 시간의 흐름과 그 안에 있었을 번영과 쇠락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색깔과 다른 크기의 간판과 글자체에서도 다채로움이 숨쉬고 있다. 수 십 년 전에 만들어진 빛 바랜 간판과 현재의 세련된 간판이 한 곳에 머물면서 조화를 이뤄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도 한 공간에 존재하는 시간의 속성과도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흘림기법은 이미 십 수년 전부터 사용해 오던 일종의 화면기법이다. 하지만 이전의 기법은 최근작 <도시풍경>에서 보여주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선 재료의 활용 면에서 보면, 흘러내린 자국이 촉각으로 느껴지고 시각적으로 입체적인 토분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기법의 역할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전 작품에서는 소재의 이미지를 확장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던 기법이 이제는 작가의 예술관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발전하였다는 점이다. 흐른다는 것 자체가 시간의 유동성을 설명하는 것처럼, 어떤 상황의 멈추지 않는 현상의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도시풍경>을 전체적으로 보면, 단독 건축물의 작품뿐 아니라 도시의 거리풍경을 그린 작품에서도 이 방식을 적용하여 휘황찬란하고 번듯한 거리도 역사의 산물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의 어떤 상태에 대한 부정의 시각이 아니다. 과거로 가 버리고 말 것에 대한 한탄의 의미는 더욱 아니다. 오히려 몇 초간의 순간조차 역사의 일부이듯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과 미처 볼 수 없는 현시대의 모습까지도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흘림을 통한 지우기가 아니라 캡슐 속에 담아둔다는 생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생활의 소중한 단편은 작가의 주변에서 일어난다. 작가는 이것들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것을 선별해 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역사의 캡슐에 담아두는 작업이 박능생의 예술작품으로 승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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