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세계
“회화는 이제 나에게 자기수련의 양태, 또는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자기수련의 산물에 다름아니다” 오늘날 한국미술을 논함에 있어 작가 박서보를 거론하지 않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50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반세기에 걸친 시간 속에서 한국미술의 끊임없는 발전과 실험 운동들의 선두에는 늘 작가 박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국제갤러리의 전시는 작가 박서보의 40여 년의 작업여정을 회고한다. 작가는 늘 본인의 작업에 대해 ‘마음을 비우는 명상과 관련된 것’ 내지는 ‘시각적 탐구를 넘어서는 것 즉, 저절로 이루어진 것’ 이란 언급을 해 왔는데, 본 전시는 이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즉. 작가가 보여준 작업의 과정이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을 비우고, 마음을 다스려 작가로서의 박서보와 인간 박서보가 모두 함께 원초적인 상태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경지에 이르름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자신을 비우고, 자신과 자연이 합일하는 상태를 넘어서 대상을 치유하는 치유의 도구로서 발전해 나아가는 작업의 궤적을 따라가고자 한다.
국제갤러리에서 이번에 선보이게 되는 50 여점의 작품은 크게 3개의 작업으로 분류된다. 초기 원형질, 유전질 시리즈 작업을 거쳐 작가의 본격적인 묘법작업이 시작되는 1967년이 이번 전시의 시작점이 된다. 각각의 시리즈는 시대별로 구획되어 보다 밀도 있게 작품의 변천사를 감상할 수 있다. 각 시리즈 별 작품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전기 묘법시대 (1967년 ~ 1989년)
1950년대 본격적인 작업활동을 선보이기 시작한 박서보는 원형질 시리즈, 유전질시리즈 등의 작업을 통해 한국화단에 모더니즘 추상회화를 선보이는데 앞장선다. 1967년부터 박서보는 새로운 변화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묘법(描法)’으로 알려진 회화 연작이 그것이다. 불어의 ‘에크리뛰르(Ecriture, 쓰기)’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진 이 그림들은 캔버스에 밝은 회색이나 미색의 물감을 바르고 연필을 이용하여 그 위에 마르기 전에 반복적으로 끊기지 않게 그은 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묘법’ 연작에서 박서보는 동양 수묵화의 기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드로잉의 본질을 강조하는 사유의 전환을 이루고 있다. 이 ‘쓰기’의 회화는 그리기, 지우기, 반복하기, 의미하기, 의미를 다시 삭제하기 등의 순환적 구조를 가장 간결한 형태의 긋는 행위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 긋기, 쓰기는 무언가를 그리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작가 스스로 회화와 자신이 일치, 동기화하는 순간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에 가깝다.
에스키스 드로잉 (1996년 ~ 현재)
에스키스-드로잉은 같은 시기에 제작된 박서보 회화의 다층적 구조를 더욱 잘 살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작업이다. 일종의 건축적 밑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드로잉들은 여러 단계의 의식적 과정들로 구성되어있다. 작가는 먼저 작은 단위의 메모들을 제작한 뒤 그것을 좀 더 큰 방안지 위에 정교하게 수정하며 옮겨 그린다. 그리고는 이를 바탕으로 다시 석판으로 만들어 놓은 방안지 위에 연필과 수정액 펜으로 부분적인 첨삭을 가하면서 공간의 깊이와 넓이를 조정해 나간다. 한 화면 위에 연필, 석판용 해먹, 수정액 펜 등을 동시에 사용하여 표면의 복합적 구성을 꾀한 이 드로잉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회화가 지니게 될 치밀하고 정교한 내적 완결성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후기묘법시대 (1989년 ~ 현재)
1989년에 이르러 박서보의 작품세계에 다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한지(韓紙), 즉 닥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닥종이를 겹겹이 화면에 올린 뒤 그 위에 제소나 유색의 물감을 얹어 종이를 적신 뒤, 다시 먹을 붓고 손가락이나 도구를 이용해 종이를 밀거나 흔적을 내는 방식의 이러한 종이작업의 특징은 유화나 아크릴 물감으로는 불가능한 화면의 물질적 존재감을 구현할 수 있다는데 있다. 화면에 균일한 패턴을 만들어낸 뒤 그것을 가벼운 터치를 통해 지우거나 부수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회화와 무관심한(disinterested) 유희의 경계를 오가는 현란한 제스츄어를 시각화 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박서보는 화면에 더욱 균일한 패턴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손가락이나 드라이버 같은 도구 대신 막대기, 대자 등을 이용하여 종이로 이루어진 표면을 일정한 간격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요철(凹凸)의 선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박서보의 회화에 있어 평면은 대상이면서 동시에 그 뒤에 있는 어떤 것을 드러내는 반투명한 면(面)이기도 하다. 이 양의성(兩義性)은 예컨대, 쓰기-지우기, 바르기-긁어내기, 쌓임-덜어냄, 높이-깊이, 불투명성-빛, 반복-해체, 구조-여백 등의 다양한 이항적(二項的, binomial) 이슈들로 이어지면서 평면에 대한 해석의 증폭을 야기한다.
2000년대에 들어 박서보의 ‘쓰기’ 회화에는 이전의 무채색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모노톤의 화면이 아닌 밝고 화려한 색채들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바닥의 색과 그 위에 얹혀져 있는 수직선의 색은 서로 겹쳐지거나 독자적으로 드러나면서 화면의 중층적 구조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 박서보의 작품들 속에서 색채는 회화를 통한 재현이 아닌 대상(objet)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물질적 레이어로서 화면에 덮여 있거나 밀어내어지는 것이며, 혹은 그렇게 밀어낸 자리에 드러나는 기층(基層)이기도 하다. 박서보의 ‘쓰기’가 양의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라면, 색채 역시 그것이 지니는 독특한 양가적 위상 즉, 상징-기호, 물리적 재현-빛, 스펙트럼의 총체성-색채의 개별성, 정지된 면-파동, 색채의 고유명-이름붙일 수 없는 색 등과 같은 수많은 이슈들을 파생시킨다. 박서보의 근작은 그가 성취하고 있는 자유와 해방의 정도를 보여준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쓰기’의 본령으로 접어드는 회화의 경지(境地)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한 화가의 원숙한 삶이 허용하는 통찰과 깊이를 가늠케 하는 지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