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Y_4772- La Foret 숲


삶과 죽음사이의 언어 – 숲 La Foret

Sept, 2010 양평 작업실에서 최용대

그림도 일종의 언어라고 생각하며 작업해온 나는 프랑스에서 귀국 후 가지는 개인전 도록 첫 머리에 “나에게 있어 그림 그리기란 삶이라는 실존(實存)과 죽음이라는 삶의 부재(不在) 사이를 이어주는 이음줄에 다름 아니다. 하여 내모든 그림은 삶과 죽음사이의 언어들이다”라고 기술 한바 있다. 이시기는 나 자신의 추상적인 내면세계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한 시기와 동일하다. 그리고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지금까지 나는 자연을 말하기위해 숲을 그리거나 설치작업을 하면서 자연 친화적인 작업을 하고 있지만 단순히 환경의 위기를 고발하거나 혹은 자연의 미덕만을 예찬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연은 스스로 치유 하며 생성, 성장, 소멸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치유할 수없는 한계 그 지점에서 나의 작업은 시작된다.

2000년에서 2008년까지
지난 작업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말하기위해 상징적인 매개체로 나무를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거나 신체 중 일부인 손을 인간의 상징적인 매개체로 화면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사이에 텍스트가 그림의 일부로 늘 함께하고 있었다. 시나 소설, 철학서적의 일부를 발췌하여 그림의 일부로서 텍스트가 화면에 배치되는 방식을 취해왔다. 먹(墨)이나 Pigment를 사용하여 광목위에 나무를 단순하게 그리거나 MDF를 나무의 형태로 오려내어 우레탄 도장후 화면에 부착하는 작업과 실제 나뭇가지를 이용한 입체작업 그리고 야외 설치작업으로 나눠진다.
설치작업에서 어쩌면 더 직접적으로 실체에 가깝게 다가가는 지도 모르겠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한 후 붕대를 감아주듯 치유의 의미로 나무에 정성스럽게 천을 감아준 후 각각 크기와 모양이 다른 양면으로 붙인 거울을 낚시 줄에 연결하여 가지 끝에 메달아 두었다. 바람이 불면 그 거울들이 회전하면서 영상처럼 주변 환경을 비춰준다. 또한 거울에서 반사되는 빛은 생명의 빛으로 읽혀지길 바라는 뜻으로 작업한적 있다.
이 모든 작업들에 등장하는 나무들은 전시장에서 개별적 나무가 모여 총체적으로 하나의 숲을 이루도록 하였다. 그리고 작업들에 등장하는 텍스트나 개별적인 단어들은 불어나 영어 또는 한글로 씌어져 있고 시나 소설, 또는 관계되는 철학 서적 속에서 발췌하였으며 더러는 관람객에게 읽혀지는 것들도 있지만 단어들만 던져진 경우도 있어 그 의미에 의문을 제공하게 하는 의도도 포함되어있다. 그 의문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가 작품을 하게 된 동기와 목적 등을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설명하게 되는 것이다. 관람객과 대화하는 과정 까지가 작업의 완성이라 생각했다. 작품들을 보고 단순한 feeling의 대상이 아니라 읽고, 느끼고 대화하는 과정도 그림을 해석하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검은 “숲”을 그리고 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거쳐 이번전시에 보여 지게 될 작품들은 그 맥락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표현방법 면에서 차이를 느끼게 된다. 전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개념적이거나 미니멀한 표현대신 사실적인 나무의 형태는 아니지만 실제 나무의 형태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프랑스에서 작업할 때부터 느껴온 거지만 흑백이 주는 강렬한 느낌이 내면에 늘 존재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검은 나무는 얼마나 무거운 철학을 내포하고 있는가? 무겁다 못해 때론 절대고독과 같은 절망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검정색이 가지는 어둡다거나 검다는 단순한 색에서 읽혀지는 개념의 논리보다 더 많은 것들을 그 속에 담고 있다. 또한 검은색은 얼마나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가? 어둠속엔 어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빛이 사라진 그 속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사물과 모든 색들과 시간과 공간까지도 함께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다시말 하자면 검은색은 모든 것을 함축하고 포용하고 있는 사유의 색이라 말할 수 있다. 검은색의 대표적인 프랑스 작가 중 한명인 Pierre Sulage의 작품엔 흑백의 대비와 직선과 면에서 나오는 강한 힘을 느낄 수 있지만 그의 그림에서 전자에서 말한 검은색만이 가지는 본질적인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다. 나는 이렇듯 많은 것을 내포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사유하게 하는 검은색으로 숲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내 그림들에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풍경이 아니다. 이것은 실존이다” ( It is not landscape, It is existence)라고… .

또다시 자연에 관하여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한
서양의 과학적 합리주의에 기틀을 마련한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Ren? Descartes는 물질과 영혼, 자연과 인간사이의 벽을 쌓아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자본주의의 기본인 이윤추구를 최대 덕목으로 여기는 지금의 시점에 까지 그의 이론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로인해 과학이 가진 엄청난 파괴력은 최근 환경파괴 현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인류학자 Kuruk Lhohn에 따르면 서양의 자연과학 철학은 자연(phisic)과 인위(nomos)를 대립적인 관점에서 파악하여 인간이 자연에 군림하는 자연관을 보여준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인간과 자연과의 공존에 무게를 둔 동양철학에서 보여준 자연관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19세기 중엽에 헤겔이 창안한 생태학(ecology)에 모든 것이 다른 것과 연관되어 있다고 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자연의 균형을 의미한다. 자연의 순환원리가 직, 간접적인 영향으로 깨지기 시작하면서 환경파괴를 낳았다. 지극히 바른 것은 태어난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닐까?

글을 마무리하며
예술은 과학과 철학이 적립한 주체와 객체라는 관계이면에 은폐된 세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 주는 작업일 것이다. 주체 없는 그림 그리기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지금 이 시점 다시 한 번 예술의 정신적인 면이 강조되어야 할 때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Merleau Ponty의 트라우마론에 자주 인용하는 Andr? Marchand의 다음 글을 옮기며 글을 마친다.
“숲속에서 나는 여러 번
숲을 바라다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어느 날 나는 나를 바라보며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바로 나무들 이라고 느꼈다.”

By 최용대

최용대 Choi, Yongdae
1963 경북 청도생, 1993-1998 프랑스에서 작품활동
Villejuif 시립미술학교(Atelier Nicolas STAVRO)졸, 프랑스

SOLO EXHIBITION
2014 La Fore?t 숲, Moa 갤러리, 헤이리 -10월
2014 La Fore?t 숲, Brown 갤러리, 서울
2012 La Fore?t 숲, 갤러리 그림손, 서울
2010 La Fore?t 숲, 갤러리 그림손, 서울
2006 시와 그림의 만남,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2005 시와 그림의 만남, 한국 현대문학관, 서울
2005 금호미술관, 서울
김춘수 자선 시화집 “꽃인 듯 눈물인 듯” 출간 기념전, 김춘수詩/최용대畵, 예담 출판사
2003 그림읽기 드로잉전, Gallery ING,경기도
2001 La Fore?t 숲,맥향화랑, Pablo Picaso, 대구
2000 La Fore?t 숲, Gallery ART Side, 서울
2000 La Fore?t 숲, Aubergenville 시립미술관, 프랑스
1999 La Fore?t 숲, 맥향화랑, 대구
1999 조선화랑, 서울
1992 관훈미술관, 서울
1992 태백화랑, 대구 Exhibitions - solo 2014 La Foret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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